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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8월 19, 2022

“사람들이 건반 위의 김연아래요..” 피아노 없는 피아니스트로 놀림 받던 소녀, 전세계 콩쿠르 휩쓸고 있는 현재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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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마비로 목발을 짚어야 걸을 수 있는 장애를 가진 부부는 아이가 장애인의 딸이라 놀림을 받을까 걱정되어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밥을 굶어서라도 기초생활수급비로 6살 때 부터 피아노 학원에 보냈습니다.

아이는 피아노에 푹 빠져 학원에서 몇 시간을 연습하고 와서도 집에 와서는 종이에 건반을 그려 놓고 피아노처럼 ‘음~음~음~’ 소리를 내며 쳤습니다.

재능도 있고, 아이의 노력도 남달랐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사는게 힘들어 체르니 40번까지 하면 그만 가르쳐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아이의 모습을 보고 부모님은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처음에는 자기 집에 피아노 조차 마련하지 못했고, 교회나 음악학원의 피아노를 빌려 하루 8시간씩 연습을 했습니다. 이때 생긴 별명이 ‘피아노 없는 피아니스트’ 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나가는 콩쿠르 마다 휩쓸어 보이며 실력을 증명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선화음악콩쿠르에서 대상을 차지한 덕분에 서울의 명문 선화 예중에 우선 입학할 기회가 왔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가난 때문에 도저히 입학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의 레슨비와 교재비를 위해 늘 같은 옷, 같은 신발을 신으면서 돈을 아끼며 여수에서 7년간 매주 한두 번씩 레슨을 위해 서울에 상경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왕복 12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다녔지만 아이는 단 한 번도 안간다거나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고, 몸이 불편한 어머니 역시 한번도 아파서 누워본 적이 없었습니다.

낮엔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하고, 밤엔 피아노를 치며 코피를 쏟는게 일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공부와 피아노에 매달렸습니다.

2009년 4월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국제청소년 콩쿠르 공동 1등

2009년 8월 현대기아차 아트드림 콩쿠르 대상

좋은 성적을 내면서 음악 영재로 선발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김대진 교수의 지도를 받게 되고, 2010년 한국예술영재 교육원에 입학 했습니다.

폴란드 루빈스타인 청소년 국제콩쿠르 공동 1등

에틀링겐 국제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 우승 (랑랑, 손열음, 김선욱이 역대 우승자)

다카마쓰 국제 피아노 콩쿠르 1등

스위스 제나바 콩쿠르 우승 (심사위원 만장 일치)

부조니 국제 콩쿠르 피아노부문 우승 (만 20세 동양인 최초 우승)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우승했던 그 해 쇼팽 콩쿠르도 예선 통과 후 본선 진출 자격이 있었으나, 부조니 콩쿠르와 시기가 겹쳐 부조니에 참여했습니다. 이 뿐 아니라 국내외 여러 대회에 출전해서 좋은 성적들을 거두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과 재능으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반열에 오른 아이의 이름은 ‘문지영’ 피아니스트 입니다.

문지영 피아니스트의 어머니는 “부모로서 뒷받침을 제대로 못해 언제나 미안한 마음인데 딸은 한번도 내색조차 않았다”며 딸을 대견해 했습니다.

가난 때문에, 형편이나 집안 사정 때문에 꿈을 포기 해야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꿈을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노력한다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문지영 피아니스트의 멋진 성공이 여러분의 용기를 한스푼 더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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